'채식주의자' 서평, 나를 흔든 고요한 균열

2025. 3. 19. 02:49나의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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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장편소설 한강
'채식주의자' 장편소설 한강

📚 '채식주의자'를 읽고, 나를 흔든 고요한 균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난 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소리 없이 파고들었고, 나도 모르게 내면의 균열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 균열은 단순한 동정이나 안타까움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왜 채식을 선택했을까?’라는 단순한 물음은 금세 사라졌다. 채식은 단지 표면일 뿐, 그 밑바닥에는 영혜라는 인물이 감당해야 했던 억압, 트라우마, 그리고 몸의 기억이 있었다. 나는 영혜가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에 놀랐다. 세상이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않자, 그녀는 몸으로 저항했다. 그건 너무도 고통스럽고 동시에 너무도 조용한 방식이었다.

 

내가 특히 인상 깊게 느낀 것은 이 소설이 ‘말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혜는 거의 말이 없다. 우리는 그녀를 통해 세상을 보지 않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그녀를 본다. 남편, 형부, 언니. 그들의 시선은 불편하고 일방적이며,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하다. 나는 그 속에서 묻는다. 나는 과연 누군가를 내 시선으로만 판단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채식 주의자' 책 표지

 

'채식주의자'는 한 사람의 선택과 붕괴가 가족과 사회에 어떤 균열을 일으키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한강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폭발적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고통은 반드시 소리 내어 울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침묵도, 쇠약해져가는 몸도 저항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말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진짜 자유로운가? 내가 내 삶에서 선택한 것들은 진짜 나의 의지였을까? 아니면 사회가 조용히 요구한 기대에 맞춰 살아온 것일까? 영혜가 몸으로 도달하려 한 자유는, 결코 누구도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경계였다.

이 작품이 특별한 건, 고통을 감정적으로만 호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과 무력함을 마주하게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오래된 상처를 다시 꺼내보게 되었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천천히 되돌아보았다.

 

'채식주의자'는 단지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너는 네 안의 어둠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묻는 이야기였다. 아프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한 번 이상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질문은 한 번 읽고 끝내기엔 너무 무겁고, 너무 날카롭다.

 

 

이미지 출처 : 자체 제작 및 창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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