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8. 23:52ㆍ나의 책장
📚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내 안에서 울려 퍼진 질문 하나
책을 덮은 후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년이 온다'는 그냥 읽고 넘길 수 있는 소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지만, 내 현재에 도달한 어떤 고통의 잔향이었다. 한강 작가의 문장을 따라가며,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인간의 고통과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이 책을 읽기 전, 광주민주화운동은 교과서 속 한 페이지일 뿐이었다. 하지만 책 속 ‘소년’은 나를 그 시대 한복판으로 데려갔고, 나는 어느 순간 그 참혹한 광경을 내 눈앞에서 직접 마주하게 된 기분이었다. 문장은 조용했고, 감정은 절제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 스며든 고통은 나를 압도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동호라는 인물은 나에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존재다. 그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나이에 친구를 잃고, 시신을 수습하며, 폭력의 실체를 눈으로 목격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함께 숨죽이며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 일이었다. 그 고요한 행위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고통을 외면하며 살아왔을까?
'소년이 온다'는 단순히 과거를 되짚는 책이 아니다. 나에게 이 책은 “기억하라”는 외침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 들춰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를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됐고, 뉴스 한 줄에도 쉽게 넘기지 않게 됐다. 한강 작가가 던진 문장 하나하나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사람을 마주보게 만드는 거울 같았다. 특히 “너는 알고 있었다”라는 구절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정말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했을까?
무겁고 아픈 이야기지만, 나는 이 책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느낀다. 우리가 외면해온 역사, 감정, 그리고 인간성에 대해 다시 마주할 용기를 준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누군가를 말없이 위로하고, 어떤 진실은 침묵 속에서 더 크게 울리기도 한다.
'소년이 온다'를 통해 내가 배운 것은 단순한 역사 지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하고, 감당하고, 함께 아파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내 작은 다짐이었다.
이미지 출처 : 자체 제작 및 창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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