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9. 17:35ㆍ나의 책장
📚 '어둔 밤을 지키는 야간 약국' 을 읽고, 상처를 감싸주는 밤의 위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통이 있는 날, 누군가 조용히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싶을 때가 있다. 바로 그런 순간을 위해 이 소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둔 밤을 지키는 야간 약국'은 밤이 되면 조용히 문을 여는 약국에서, 무언가 아픈 사람들을 맞이하는 이야기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삶이 아픈 사람들 말이다.
이 책은 내게 ‘약국’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상징적인 장소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낮에는 그냥 지나치는 곳이지만, 밤에 불이 켜진 이곳은 마치 세상의 외곽에 밀려난 이들을 위한 피난처처럼 느껴졌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의외로 우리의 일상 속에 숨어 있다. 잊고 지낸 슬픔, 감추고 있던 후회, 혹은 혼자서 견디기엔 너무 무거운 외로움.
주인공이 손님들에게 약을 건네는 장면은 단순한 직업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치유 의식처럼 다가왔다. 그는 그들의 말을 무심한 듯 듣지만, 그 안에는 온기가 있다. 조언이나 해결책을 주지 않더라도, 그저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버틸 수 있게 되니까. 나는 그 점에서 이 책이 가진 조용한 힘을 느꼈다.
이야기 속 약국은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공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도 현실적이다. 너무 진짜 같아서 가끔은 읽는 내가 아파질 정도였다. 그만큼 이 책은 우리 모두의 마음 어딘가에 있는 약국 한 켠을 건드리는 이야기였다. 누구나 한 번쯤 밤에 혼자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그 순간들. 이 소설은 그런 순간들을 대신 말해주고, 다정하게 다독여준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과 ‘이해하려는 용기’의 차이였다. 약국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이해해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하지만 약사인 주인공은 그저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그들과 마주한다. 그 차이는 크다. 우리는 종종 이해해달라고 말하지만, 스스로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놓칠 때가 많다. 이 책은 말없이 그런 질문을 던져왔다.
책장을 덮고 나니, 문득 내가 찾고 싶은 ‘야간 약국’이 떠올랐다. 나 역시 삶의 어느 밤,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읽는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읽는 내내 내 안의 어둠을 스스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어둔 밤을 지키는 야간 약국'은 삶의 어두운 구석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곳에 조용히 불을 켜주는 이야기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심이 있고, 빠르지 않지만 분명히 따뜻하다.
그 밤, 우리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 하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
이미지 출처 : 자체 제작 및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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