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0. 20:32ㆍ나의 책장
'오만과 편견 ' – 시대를 뛰어넘은 감정의 진동
'오만과 편견'을 읽고 처음 느낀 감정은 “익숙함”이었다.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인간의 감정과 관계의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느끼는 거리감, 오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감정의 변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 안의 어떤 경험과도 겹쳐지는 듯한 순간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엘리자베스는 당시 여성상이 갖기 어려웠던 용기와 독립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신념을 우선했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매이지 않고 진정한 존중과 사랑을 갈망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통해 다아시를 바라보는 내 마음 역시 함께 변화했다. 처음엔 다아시의 냉담한 말투와 무뚝뚝함이 불쾌하게 다가왔지만, 시간이 흐르며 드러나는 그의 진심은 나조차도 부끄럽게 만들 만큼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오스틴이 펼쳐 보이는 인물들의 ‘성장’이었다. 그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편견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용기를 가졌고, 다아시는 자만과 고집을 내려놓고 엘리자베스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되었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가 변화하고 성장한 결과였다는 점이 이 소설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작가는 풍자와 유머를 능란하게 사용해, 당시 사회의 위선과 계급주의를 세련되게 꼬집었다. 베넷 부인의 과장된 행동이나, 콜린스 목사의 비굴한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이었다.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사회적 통념의 허상을 드러내고, 독자로 하여금 사랑과 결혼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마음을 사로잡은 건, 사랑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였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제목처럼, 관계의 처음은 언제나 서로를 잘못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진심이 닿았을 때 그 벽은 허물어졌다. 그 과정을 따라가며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선입견 속에 누군가를 가둬왔는지, 그리고 상대 역시 나를 그 틀 안에 가두었을 수도 있겠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사랑은 감정 이전에 태도이고, 서로를 향한 이해의 깊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과 편견'은 고전이라는 무게감 속에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현재의 삶과 감정에 생생하게 맞닿아 있었다. 이 소설은 결국 나에게 묻고 있었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 나는 얼마나 오만하고, 또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꽤 오랫동안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진짜 사랑은 완벽함에서 오는 게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함께 자라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지 출처 : 자체 제작 및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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