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0. 21:56ㆍ나의 책장
'인간 실격' - 존재의 끝에서 마주한 인간성 감상평
살아가는 동안 한 번쯤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이 삶 전체를 집어삼킬 만큼 무거워질 때, 인간은 끝내 자신을 부정하고 마는 지점에 도달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은 바로 그 심연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느꼈던 감정은 당혹감에 가까웠다. 주인공 요조는 우리 대부분이 무의식적으로 감추는 내면의 나약함과 불안, 외로움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그는 세상과 자신 사이에 놓인 단단한 유리벽을 손끝으로 두드리며 애써 웃는 법을 배우지만, 그 웃음은 결국 무너진 자아를 감추기 위한 얄팍한 가면에 불과했다. 나는 그 웃음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그가 얼마나 절실하게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부정하려 했는지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 작품의 가장 아픈 부분은, 요조가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면서도 그럴수록 더 깊이 고립되어 간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지만 동시에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단죄한다. 그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는 점점 무너진다. 요조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려 하고, 규정된 모습이 어긋날 때마다 자신을 더 철저히 부정한다. 그 모습이 너무도 비극적이고, 그래서 더욱 인간적이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이 소설이 단지 한 남자의 파멸기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 실격' 은 인간이 사회라는 틀 속에서 얼마나 쉽게 길을 잃고,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다 오히려 자아를 잃어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인간관계는 기대보다 훨씬 더 위태롭다. 작가는 그 위태로움을 직시하며, 아름다움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는 솔직하게, 잔인하리만큼 정직하게 삶의 어둠을 말한다.
읽는 내내 마음속에 파문이 일었다. 한 인간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무너지는 과정을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경외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모르게 요조를 감싸 안고 싶어졌다. 그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무너지던 그 순간들조차도, 한 인간의 몸부림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나’라는 존재를 되짚으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선 가치를 가진다.
'인간 실격' 은 단연코 밝은 책은 아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인간이 무엇으로 흔들리고, 어디서부터 무너지며, 어떻게 끝까지 자신을 붙잡으려 하는지를 명확히 본다. 어쩌면 이 책은 우리가 꺼내기 두려운 감정을 대신 직시해주는 거울 같은 존재가 아닐까.
누구나 외롭고 누구나 불안하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감추고 사느냐의 차이일 뿐. 요조의 고백은 그 숨겨진 내면을 조심스럽게 건드린다. 그리고 그 울림은 책을 덮은 후에도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 자체 제작 및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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