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4. 14:24ㆍ나의 책장
📚'백광'감상 후기 – 어둠을 꿰뚫는 침묵의 진실
책장을 덮은 후, 한동안 침묵 속에 머물렀다. '백광'은 단순히 미스터리의 공식을 따라가는 소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과 죄의식, 그리고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선택’의 무게를 묵직하게 들이민 이야기였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진실’이란 단어에 대한 나의 감각이 서서히 달라졌다. 누군가에겐 정답처럼 보이는 진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가차 없는 파괴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 작가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가 믿고 있던 옳고 그름의 경계를 서서히 흐트러뜨린다. 모든 인물들이 자신만의 ‘정당한 이유’를 갖고 있고, 그 안에는 선과 악이 한몸처럼 얽혀 있다. 그래서 누구 하나 쉽게 비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큰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주인공 탐정의 행보는 마치 빛을 찾아 어둠 속을 맨몸으로 헤매는 것 같았다. 그는 범인을 찾는 것 이상으로,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끊임없이 들여다본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단순한 논리적 퍼즐 풀이가 아니라, 한 인간의 인생과 선택을 이해하고 끌어안는 여정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한 진실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다만, 인간이라는 복잡한 생명체의 깊이를 다시금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백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범죄를 통해 ‘왜’라는 질문을 반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람은 어떤 계기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가. 상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그 끝은 어디에 닿는가. 작가는 이러한 질문을 서사 속에 촘촘히 녹여내며, 독자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공감의 주체가 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페이지를 넘길수록 우리는 단서를 따라가는 것보다, 인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문체 또한 이 책의 몰입감을 배가시킨다. 불필요한 수식은 줄이고, 감정의 본질을 명확히 드러내는 문장은 사건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어떤 문장에서는 한참을 멈춰 그 여운을 되새기게 된다. 그것은 단어의 힘이라기보다, 그 이면에 담긴 감정의 진정성이 독자를 흔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수학처럼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논리적으로 쌓아 올린 구조물도, 감정이라는 변수 하나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백광'는 그 불확실함의 영역을 정교하게 건드리며, 우리가 알고 있던 미스터리의 틀을 뒤흔든다.
한 권의 책이 인간의 깊이를 어디까지 조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 '백광'은 그래서 추천이 아니라, 경험해야 할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한 반전이 아닌, 사람을 이해하려는 애틋한 시선이 책 전반에 스며 있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미지 출처 : 자체 제작 및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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