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서평, 사랑이 이토록 절실한 희생이라면

2025. 3. 23. 22:22나의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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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추리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용의자 X의 헌신' 추리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 '용의자 X의 헌신' - 사랑이 이토록 절실한 희생이라면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은 바로 그런 절박한 감정의 끝자락을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추리 소설인 줄 알았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경찰이 등장하며, 용의자와 주변 인물들의 알리바이를 좇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이 이야기는 단순한 ‘범죄’의 수사선을 넘어서, ‘헌신’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끌어안기 시작했다. 그것도 상상 이상으로, 깊고 아프게.

 

수학 천재 이시가미는 조용히 살아가는 인물이다. 세상과는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오직 수학 문제에 몰입하며 스스로를 지켜낸다. 그런 그의 일상에 야스코라는 여성이 들어온다. 그녀는 밝지도, 특별히 지적인 것도 아니지만, 그에게는 유일하게 마음을 줄 수 있는 존재였다. 그가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만든, 단 하나의 사람.

 

야스코가 전 남편을 살해하게 되었을 때, 이시가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진다. 그것은 희생이었다. 정의나 도덕이 아니라, 사랑 하나만으로 계산한 결과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걸고 그녀의 죄를 감추며, 그 어떤 명분도 없이 침묵 속에 모든 책임을 짊어진다.

 

'용의자 X의 헌신' 책 표지
'용의자 X의 헌신' 책 표지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자꾸만 무거워졌다. 범인의 시점이 드러났음에도 긴장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사건의 해결이 곧 이 남자의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는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 죄를 품은 사람이었다. 끝까지 단 한 마디 변명조차 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때로 정의보다 더 고귀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진정한 헌신은 증명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저 상대방이 편히 숨 쉴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뒤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것. 그것이 이시가미가 선택한 사랑의 방식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참으로 무겁고도 깊게 다뤘다. 미스터리라는 틀 속에 인간의 내면을 정교하게 엮어낸 이 소설은 단순한 반전 이상의 여운을 남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사랑이라는 이유로 이토록 무모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사랑, 정의, 진실, 헌신. 이 단어들이 서로 부딪히고, 얽히고, 결국엔 조용히 하나의 결말로 향하는 과정은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강한 감정적 경험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의 조용한 절망이, 그리고 그것을 감싸는 비극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의 침묵이 들려주는 이야기, 그것이 이 책의 진짜 반전이었다.

 

이미지 출처 : 자체 제작 및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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