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땅의 야수들' 서평, 잊히지 않는 이름 없는 이들의 목소리이다

2025. 4. 22. 23:25나의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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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땅의 야수들' 소설 줄거리, 김주혜 작가
'작은땅의 야수들' 소설 줄거리, 김주혜 작가

 

📚'작은땅의 야수들' 서평, 잊히지 않는 이름 없는 이들의 목소리이다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우리가 잊어가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김주혜 작가의 '작은땅의 야수들'은 바로 그런 역할을 수행한 소설이다. 이름도, 기록도 남기지 못한 이들이 살았고 사랑했고 울부짖었던 시절의 온기를 고스란히 품은 이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닌 ‘기억’의 서사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느낀 건, 이 이야기가 거대한 영웅담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 소설은 사냥꾼, 기생, 고아, 유학생, 시위대처럼 익숙하면서도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들의 목소리는 작지만 단단하며, 조선이라는 땅에서 각기 다른 위치에있었음에도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모여든다. 나는 그 흐름을 따라가며, 이들이 겪어야 했던 삶의 무게를 마음 깊이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여성 인물들의 존재감이었다. 역사 속 여성은 종종 주변화되기 마련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오히려 서사의 중심에 서 있다. 은실과 월향, 그리고 연화는 그 시대를 관통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단지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연인이 아닌, 고유한 삶과 결정을 가진 주체로 그려졌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다. 이들의 선택은 생존이었고, 저항이었으며, 침묵이 아닌 외침이었다.

 

'이땅의 야수들' 책표지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한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다. 1918년부터 1919년, 조선이 가장 뜨거웠던 시절이다. 하지만 작가는 단지 3·1운동이나 거창한 사건만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왜” 사람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를 세심하게 따라간다. 그래서 독자인 나 역시 당시의 공기, 침묵 속의 긴장, 희망 속의 절망을 함께 호흡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미덕은 서사보다 문장 그 자체에 있다. 김주혜 작가의 문장은 단정하면서도 강렬하며, 한 문장 안에 인간의 감정과 시대의 그림자를 압축해 담아낸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각 장면은 영화처럼 선명하게 펼쳐진다. 이야기보다 문장이 더 먼저 마음에 들어오는 경험은 흔하지 않은데, 이 책은 그런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감동은 “기억”이라는 주제다. 작가는 묻는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독립은 단지 위대한 몇몇 인물들의 업적이 아니라,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총합이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잔잔하지만 단호하게 증명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쉽게 입에 올리던 ‘역사’라는 단어를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작은땅의 야수들'은 읽는 동안도 좋지만, 책을 덮은 후에 더 깊은 울림이 남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지나간 과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살아 있는 목소리이다. 내가 이 책을 기억할 이유는 많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이 소설은 결국 “우리는 누구의 이야기를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든 작품이었다.

 

이미지 출처 : 자체 제작 및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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